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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마냥 행복합니다”(손영자)

작성자
광주광역시센터관리자
등록일
2006-01-16 00:00:00
조회수
2158
[자원봉사 체험사례3]“‘더불어 사는 삶’…마냥 행복합니다”
두려움·설레임으로 시작…사회복지학 전공 전문봉사활동

손영자 광주시 행정자원봉사단원


호남투데이 webmaster@honamtoday.co.kr



내가 처음 자원봉사를 시작한 동기는 나의 조그만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소박한 마음과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의외로 많다는 것과 이웃을 돌아볼 수 있다는 여유로 나는 마냥 행복한 마음에 젖어 지냈다.

이제 몇 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다보니 여러 경험을 통해 지금은 자원봉사 활동 영역이 넓어졌고 삶의 의미와 더불어 사는 인간애의 정신을 느끼게 되었다.

몇 년 전 여름이었다. 알고 지내던 수녀님을 통해 호스피스 자원봉사 요청이 들어와 며칠간 고민을 했다. 호스피스(hospice)란 무엇인가. 당시만 해도 낯선용어였다.

그러나 두려움과 함께 강한 마음의 이끌림이 있었다. 흔히 접해보지 못했던 세계지만 결단을 내려 수용했다. 먼저 호스피스에 대한 교육과 정해진 교육과정을 마치고 봉사 전날 호스피스 대상자와 관련한 자료들을 숙지했다. 대상자들에게 짧으면서도 따뜻한 사랑이 담긴 말 한마디라도 전하기 위해 책을 뒤적이며 긴장했다.

호스피스 대상자들과의 첫 만남은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조바심이 앞섰다. 하지만 생각보다 마음은 편하고 기대가 되었고 그들의 얼굴은 밝았지만 대화 중간 중간에 묻어나오는 깊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나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다.

나의 봉사 프로그램은 30대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칼라믹스, 얼굴 맛사지, 카드 만들기, 십자수 등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칼라믹스로 만드는 작품은 그분들의 성격과 감정이 색깔과 모양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그분들 중 한분은 70세의 할아버지로교직에 계시다 퇴직 후 지금은 건강이 안 좋으셔 쉬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오셔 장기와 바둑, 신문 등을 보시기도 하셨는데 나에게 참 좋은 말씀을 하셨다.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아요.” 그런 말씀을 하신지 일주일 뒤 병으로 하늘나라에 가셔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분의 명복을 빌었다.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니 내가 그들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미리 연습한 내용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차츰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갔다. 이를 통해 나는 오히려 인간 생명의 삶과 진지함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광주시 주최로 여성자원 봉사자 전문 교육과정 중에 충북 음성 꽃동네 견학과 자원봉사도 있었다.

나는 당시 광산구 대표로 그 동안의 자원봉사 사례 발표를 했는데 발표를 마치고 나니 한편으론 더 열심히 더 희생적으로 섬기고 봉사했던 동료들도 있었다는 생각에 왠지 미안스럽고 죄송했다. 그동안 몇 번의 수료증과 위촉장, 표창장을 받았지만 그럴때마다 항상 나는 새로운 각오와 부지런히 해야겠다고 다짐으로 임했다.

2002월드컵축구 광주대회를 앞두고 자원봉사 모집이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서류를 냈고, 면접을 보았다. 합격자 발표일까지 국제 행사에 대한 기대감과 작은 떨림이 지속됐다.

다행히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너무 기뻤으며, 기쁜만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리란 생각으로 작은 일조차 지나치지 않고 담당 직원의 말을 따르며 열심히 도왔다. 준비하는 과정의 일들이 너무 많았고, 때로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지만 마음은 행복하고 즐거웠다.

맨 먼저 할일은 넓고 넓은 경기장 좌석 위치와 주변의 편의 시설들을 둘러보고 확인하는 일이었다. 집과 경기장을 오가면서 월드컵 핸드북을 들춰보며 경기장 좌석과 위치, 내방객이나 관람객들을 대하는 자세, 각 나라의 풍습과 문화에 대해 주의 깊게 읽으며 머릿속에 담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경기도중에 터져 나온 관중들의 “대~한 민국”의 큰소리 응원은 내 조국에 대한 사랑과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이 앞서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곳을 찾은 연예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도 가졌고, 흥이 나서 열심히 나의 직무에 충실했다.

경기도중 한 스페인 남자분이 좌석 안내 요청을 하자 안내해 드렸더니 그는 한국말로 아주 천천히 “참 이뻐요, 고마워요”하면서 시원한 음료수를 권했다. 나는 스페인어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란 인사말 밖에 하지 못했다. 너무 미안했었고, 어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준비 과정이 미흡해 스스로 자괴심을 가졌다. ‘간단한 영어 한마디라도 배워둘 걸’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해단식 때 나는 행운권 추첨의 기회와 영광스럽게도 문화부장관상과 기장을 받았다. 당시의 그 기분과 기쁨은